올가을의 시작은 예술과 함께였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패션위크와 아트 페어의 개막은 다양한 스타일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대 패션위크의 포문을 연 뉴욕에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알라이아(@maisonalaia)의 런웨이 장으로 변했고, 가장 최근에 막을 내린 《아트 바젤 파리》에서는 미우미우(@miumiu)의 런웨이 쇼를 확장한 《테일즈 앤 텔러》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런던의 갤러리와 밀라노의 패션쇼장에서는 예술과 패션계 인사들이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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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의 시작은 예술과 함께였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패션위크와 아트 페어의 개막은 다양한 스타일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대 패션위크의 포문을 연 뉴욕에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알라이아(@maisonalaia)의 런웨이 장으로 변했고, 가장 최근에 막을 내린 《아트 바젤 파리》에서는 미우미우(@miumiu)의 런웨이 쇼를 확장한 《테일즈 앤 텔러》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런던의 갤러리와 밀라노의 패션쇼장에서는 예술과 패션계 인사들이 한데 […]
![아트 바젤 파리 2024 미우미우](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아트-바젤-파리-2024-미우미우.jpg)
올가을의 시작은 예술과 함께였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패션위크와 아트 페어의 개막은 다양한 스타일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대 패션위크의 포문을 연 뉴욕에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알라이아(@maisonalaia)의 런웨이 장으로 변했고, 가장 최근에 막을 내린 《아트 바젤 파리》에서는 미우미우(@miumiu)의 런웨이 쇼를 확장한 《테일즈 앤 텔러》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런던의 갤러리와 밀라노의 패션쇼장에서는 예술과 패션계 인사들이 한데 뒤섞여 함께 행사와 파티를 즐겼다.
![샤넬 에어로센 서울](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샤넬-에어로센-서울.jpg)
국내 역시 지난 9월, 한국 최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프리즈 서울 2024》의 개막을 기념한 문화계 행사들로 서울의 밤이 북적였다. 샤넬(@chanelofficial)의 뮤즈, 지드래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낸 리움 미술관과 샤넬 컬쳐 펀드의 협업 전시부터, 세계 최고의 아트 컬렉터로 손꼽히는 《피노 컬렉션》 전시를 후원하는 생로랑(@ysl) 그리고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와 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개최하는 ‘기예르모 로르카(Guillermo Lorca)’의 아시아 첫 전시까지. 예술이란 이름 아래 전 세계의 패션과 아트는 공생과 융합을 거듭하며 지금도 그 열기를 곳곳에서 이어가고 있다. 아트와 무관한 패션 하우스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패션의 예술사랑,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스키아파렐리 랍스터 드레스](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스키아파렐리-랍스터-드레스.jpg)
영원한 뮤즈, 예술과 함께 한 패션사
예술과 패션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다. 20세기 촉발된 산업혁명은 패션 디자이너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 기술을 선물했다. 회화와 공예를 아우르는 예술을 추구했던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는 연인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Emilie Floge)’와 작품 속 원단을 디자인하는가 하면,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함께 쿠튀르 컬렉션을 구현했다. 뜨개의 일부에 리본을 새겨 넣어 시각적 충돌을 일으키는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스웨터부터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바닷가재 전화기(Lobster Telephone)”를 의복에 접목한 드레스까지. 초현실주의라는 미술 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패션 영역을 구축한 시도는 마틴 마르지엘라, 조나단 앤더슨 등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남긴다.
역시 현대 예술에 열렬한 애정을 가져온 이브 생로랑은 1965년,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 드레스를 발표했다. 바로 “몬드리안 룩(Mondrian Look)”이다. 조형성에 입각한 그의 작품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크리스티앙 루부탱을 비롯한 여러 브랜드에서 재해석되었다. 이후 예술 작품을 의복에 입힌다는 아이디어는 브랜드를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마케팅 툴로 존재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예술과 패션의 관계는 더 긴밀해진다.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할 당시, 그는 ‘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제왕’이라 일컬어진 바 있다. ‘제프 쿤스(Jeff Koons)’,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등 다양한 분야의 현대 예술가와 협업을 진행하며 브랜드 헤리티지에 동시대성을 부여했다.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 2022](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샤넬-넥스트-프라이즈-2022.jpg)
패션, 예술계의 언덕이 되다
패션과 예술의 연결 지점은 자연스럽게 후원의 관계로 이어졌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1990년대부터 열렬한 아트 컬렉터로서 이탈리아 곳곳에 전시회를 개최하도록 후원을 지속했다. 또한 피카소, 만 레이를 비롯한 당대 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누었던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은 현대 샤넬 하우스의 문화예술 어워즈인 넥스트 프라이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디자이너 개인의 기호를 넘어 브랜드 전체 차원에서 예술 후원에 나서는 풍조로 이어졌다. 1988년 설립된 로에베 재단은 많은 영감이 되어준 공예 분야에 초점을 맞춰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했으며, 에르메스 재단은 해외 브랜드로서는 최초로 2000년부터 국내 미술계 지원을 위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운영하며 서도호, 양혜규, 박찬경, 니키 리 등 다양한 한국 예술가들을 발굴, 후원해 왔다.
![까르띠에 전시](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까르띠에-전시.jpg)
브랜드는 후원을 넘어서, 아트 비즈니스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아틀리에 에르메스, 시세이도 갤러리 등 브랜드명이 붙은 예술 공간은 더 이상 낯선 명칭들이 아니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웅장한 선박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자 미술, 음악, 무용, 문학을 아우르는 문화 행사 개최지로 전 세계 여행자들이 꼭 들러야 할 예술 공간으로 꼽힌다. 심지어 까르띠에 재단 미술관은 전시 개최를 위해 예술가들에게 직접 커미션을 넣으며, 국제 예술 작품 제작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임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렇듯 현대 미술계에 있어 패션 브랜드는 최대의 후원자 중 하나로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생로랑 피노 컬렉션 로제](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생로랑-피노-컬렉션-로제.jpg)
예술이란 이름 아래, 허락되는 아우라
그렇다면 패션계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대량 소비문화를 촉발했고, 패션 하우스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저마다의 미학을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만 했다. 여러 쿠튀르와 공방 컬렉션은 각자가 추구하는 ‘미’를 탐구했고, 이를 곧 부와 아름다움을 내포한 동경의 대상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곧 예술품만이 가지는 ‘아우라’와 이어진다. 존재 자체만으로 흰 벽에 걸려 전시되는 작품처럼, 선망의 대상으로서 조형적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가 되고자 당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떠올려 볼 때, 그는 패션의 확장에 예술이 필수 불가결했음을 이미 예상했는지 모른다.
프리즈 서울을 기념하며 송은에서 펼쳐진 피노 컬렉션 전시는 동시에 후원사 생로랑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경험했던 작품의 가치를 그대로 제품이 존재하는 전시장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짜인 동선이다.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의 ‘아우라’야말로 패션계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마틴-마르지엘라-전시.jpg)
그 자체로서의 예술, 패션
예술의 후원자 겸 동반자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패션 산업, 이를 두고 서로의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프라다 재단 설립에 관한 인터뷰에서 “패션은 나의 업이자 열정인 동시에,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지는 재정적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밝히며 재단 사업과 자신의 현업인 패션 브랜드와의 독립성을 존중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역시, 1984년 설립과 함께 메종과 재단을 명확히 구분 짓는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브랜드의 후광에 기대지 않는 익명성의 패션을 추구한 마틴 마르지엘라는 패션계를 떠나, 시각 예술가로서 제2막의 인생을 열었다.
![젠틀몬스터 홍대](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03/젠틀몬스터-홍대.jpg)
“산업이 없는 삶은 메마른 불모지이고, 예술이 없는 산업은 야만이다.”
_오스카 와일드
그렇다면 패션 산업 속 예술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계적인 문호 오스카 와일드는 산업과 예술의 공생을 긍정하며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국내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는 젠틀몬스터(@gentlemonster)는 설치 미술을 활용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장해 화제성과 의의를 동시에 잡았다. 마치 “문화공간을 경험한다는 듯하다.”라는 감상평을 얻는 매장 공간 속 제품들과 함께 전시되는 작품에는 예술가의 정보를 알려주는 캡션이 붙지 않는다. 작품은 존재 자체로 공간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프라다, 까르띠에의 예술 재단들이 문화계와 대중의 인정을 고루 받을 수 있는 이유는 특정 취향이나 금전적 이익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패션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순간들에는 예술의 필요에 마땅한 당위가 선행되어 있었다. 확고한 가치와 대체 불가능한 목적으로 예술이 활용될 때, 패션의 범위가 진정한 예술로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트 바젤 파리 2024](https://oncuration.com/wp-content/uploads/2024/10/아트-바젤-파리-2024.jpg)
예술과 패션의 교차
총체적인 장르로서, 예술의 범위를 규정지을 수 없는 시대. 예술계와 패션계 간의 결합은 앞으로도 공고해질 것이다. 패션계에서는 예술의 ‘아우라’를 통해 마케팅에 도움을 얻을 수 있고, 패션계의 지원은 대중과 예술의 접점을 늘려 예술을 진흥시킨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대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패션의 본질로 돌아가기도, 또 새로운 만남의 장을 일구기도 한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랑받는 예술을 잘 즐기기 위해선 대중 역시 수용자로서 주체적인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예술과 패션의 만남은 시대의 과제로서 더욱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튼튼한 뿌리가 있다면 얼마든 뻗어나갈 수 있는 넝쿨처럼 예술의 끝없는 차양 아래, 삶의 아름다움을 좇는 패션 하우스들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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